WALL LAMP CONCH I 월 램프 콘치
3,570,000원 (배송비 별도)
Serge Mouille I 세르주 무이
1962년 디자인
E 14 (Max. 60W)
W 400 D 210 H 200 mm / 0,90 Kg
Steel (Body), Brass (Swivel), Aluminium (Reflector)
Black, White (리플렉터 내부 컬러는 모두 화이트 )
Made in France
월 램프 콘치 WALL LAMP CONCH
1962년 ‘파리 살롱 데 자르 메나제(Salon des arts ménagers)'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자연의 대상이 충실하게 재현된 이 월램프는 평소 세르주무이가 세심히 관찰한 자연의 여러 대상물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조명은 조개 껍대기의 아름다운 곡선을 반영한 결과물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좌우 한 쌍으로 구성된 조명은 우아한 대비를 이루며 빛의 대칭과 균형을 보여줍니다.
콘치 벽등은 세르주무이 정신에 부합하는 전통과 클래식한 디자인을 간직한 채 현대적인 기능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조명입니다.
세르주무이의 모든 제품은 아틀리에 핸드메이드 제품으로 각 제품마다 인증번호가 각인되어 있으며 정품 인증서를 동봉합니다.
원산지 프랑스
제조사 에디션 세르주무이
브랜드 세르주무이
무게 1kg
Serge Mouille I 세르주 무이 (1920-1988)
그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파리의 자르댕 데 플랑트(Jardin des Plantes)에서 모델들을 찾곤 했는데, 그곳에서 식물과 동물을 그리며 몇 시간씩을 보냈다.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응용미술 학교(Arts Appliqués) 입학 시험에 응시했고, 13세의 나이로 합격하여 당시 최연소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의 멘토 가브리엘 라크루아(Gabriel Lacroix)는 그를 망치로 금속을 다듬는 기술의 대가로 키워냈습니다. 그는 파리의 에넨 오르페브르(Hénin Orfèvre Paris)에 입사하여,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련한 장인들 사이에서 금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세르주 무이는 독립하여 여러 금세공 업체를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장인이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국립 응용미술 및 공예 학교(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Appliqués et métiers d’Art)에서 교사로도 활동하며, 가브리엘 라크루아의 뒤를 이어 금세공 아틀리에의 책임자를 맡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교육자이자 연구자로 헌신했는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세르주 무이의 드로잉, 모노그래브 작업들이 그의 인생 44년에 걸친 연구의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1951년, ‘콩파니 데 자르 프랑스(Compagnie des Arts Français)’의 대표 자크 아드네(Jacques Adnet)를 만난 것이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아드네는 그의 남미 고객들을 위한 ‘대형 조명기구’ 디자인을 의뢰했습니다. 세르주는 작업에 착수하여 스탠딩 램프 3암스를 디자인했고, 이후 ‘포르므 누아르’(Formes Noires)’라는 유명한 시리즈를 전개하며 장인에서 창작 예술가로의 지위를 점차 확립해 나갔습니다. 3암스 스탠딩 램프와 원암 스탠딩 램프가 그 첫 번째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약 10년간 42여종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들은 오리지널 그대로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세르주 무이의 철학과 정신을 이어받은 10여 명의 장인이 연간 약 2,000점만을 한정 생산합니다.
그의 작품은 시대와 유행을 초월한 클래식으로 단순한 조명을 넘어 희소한 예술적 오브제로서 가치를 지닙니다.
Serge Mouille I 세르주 무이 (1920-1988)
그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파리의 자르댕 데 플랑트(Jardin des Plantes)에서 모델들을 찾곤 했는데, 그곳에서 식물과 동물을 그리며 몇 시간씩을 보냈다.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응용미술 학교(Arts Appliqués) 입학 시험에 응시했고, 13세의 나이로 합격하여 당시 최연소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의 멘토 가브리엘 라크루아(Gabriel Lacroix)는 그를 망치로 금속을 다듬는 기술의 대가로 키워냈습니다. 그는 파리의 에넨 오르페브르(Hénin Orfèvre Paris)에 입사하여,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련한 장인들 사이에서 금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세르주 무이는 독립하여 여러 금세공 업체를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장인이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국립 응용미술 및 공예 학교(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Appliqués et métiers d’Art)에서 교사로도 활동하며, 가브리엘 라크루아의 뒤를 이어 금세공 아틀리에의 책임자를 맡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교육자이자 연구자로 헌신했는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세르주 무이의 드로잉, 모노그래브 작업들이 그의 인생 44년에 걸친 연구의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1951년, ‘콩파니 데 자르 프랑스(Compagnie des Arts Français)’의 대표 자크 아드네(Jacques Adnet)를 만난 것이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아드네는 그의 남미 고객들을 위한 ‘대형 조명기구’ 디자인을 의뢰했습니다. 세르주는 작업에 착수하여 스탠딩 램프 3암스를 디자인했고, 이후 ‘포르므 누아르’(Formes Noires)’라는 유명한 시리즈를 전개하며 장인에서 창작 예술가로의 지위를 점차 확립해 나갔습니다. 3암스 스탠딩 램프와 원암 스탠딩 램프가 그 첫 번째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약 10년간 42여종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들은 오리지널 그대로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세르주 무이의 철학과 정신을 이어받은 10여 명의 장인이 연간 약 2,000점만을 한정 생산합니다.
그의 작품은 시대와 유행을 초월한 클래식으로 단순한 조명을 넘어 희소한 예술적 오브제로서 가치를 지닙니다.